다소 경망스럽게도 주인공의 이름 익수를 본 순간 떠오른 것은 Blood+ 의 익수(翼手) 였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한편으로는 Blood+ 1기 베트남 시기의 에피소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전쟁의 잔상과 그로 인해 끝없이 이어지는 상쟁과 생채기들. 짐짓 굵은 목소리로 극 전반을 관통하는 데이비드의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이란 레토릭도 소설 속으로 투영되어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 영호는 묻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베트남전 화학병 출신 김익수는 왜 "서서히 그러나 마침내 심장에 박히는 총알" 슬로우 불릿을 끌어안고 살아가며, 하반신 마비가 된 자신은 왜 매몰찬 작별사¹ 를 남기며 기도원 속으로 삶을 옮겨가야 했는지를. 그리고 우리 더 이상 "당랑거철"하지 말자고 말해야 하는지를... 영호와 함께 호랑이 꼬리, 호미곶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익수는 "밀림의 타는 혼백"에 대한 고해를 하고 쇳물처럼 붉은 해를 맞이한다. 자신의 영혼을 태우고 있다면 항상 저렇게 붉은빛이 곁에 있을 거라는 영호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그 해맞이 장면부터 결말은 지레짐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연한듯 싶지만 강렬한 분출을 보며, 가슴 한켠이 저려오는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서럽고도 아린" 이야기는 출간된 지 5년이 지났어도, 아니 Agent Orange 는 전후 30년이 지나도 현재진행형일테니. 박찬욱 감독의 영화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방현석의 시나리오만이 남은 것 같지만, 이대환의 소설 슬로우 불릿 속 영호의 "삶을 태우는 붉은 빛깔의" 분노는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었다.
¹ "인간적 관심에는 쇠토막처럼 둔감하고 정치적 계산에는 성감대처럼 예민한 인간들이 이 나라의 권력자들이지요. 그들의 성감대가 제때 흥분해서 고맙게도 엄마의 짐을 가볍게 해주는군요. 나도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아버지, 그때 경부고속도로에 가서 참 잘 싸웠습니다. 안 그랬으면 엄마의 허리가 부러지거나 내가 굶어 죽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할 뻔했잖아요? 다른 생각은 마시고, 두 아들 중의 하나는 출가를 해서 도 닦는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일찍이 아버지가 베트남전에 갔던 덕분에 든든하게 뒷바라지를 맡을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 슬로우 불릿 | 이대환 [나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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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9 22:53
2006/05/29 22:53
tags: Agent Orange, Blood+, Book, Defoliant, Novel, Slow Bullet, Vietnam, Vietnam War
Posted by lunamoth on 2006/05/29 22:53

| Nỗi buồn chiến tranh [나의 서재]
중첩적이고도, 비선형적인 끼엔의 회상은 소설 초반부터 겹겹이 쌓여 조금씩 그 슬픔을 배어가게 합니다. 실종자 수색대의 여정에서 스며드는 혼령의 숨결과 인간이 만들어낸 슬픔과 절망밖에 없는 세상의 초상이 겹쳐집니다. 그 홍강 너머로 사라지는 쓸쓸한 석양 같은 향수는 어느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습니다. 더 이상 슬픔이 아닌 가슴 찢어지는 고통으로 변하기 전에 또 다른 과거로 떠나야 합니다. 시들고 퇴색한 존재들과 관념적이고 잊힌 감정들의 마지막 망명지로.
하지만 상상과 영혼이 만들어내는 그의 음울한 소설 아니 모든 행복과 고통의 피안에 서 있는 도도한 슬픔은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회한과 죄책감 속에 점점 소멸하는 영혼을 따라가다 끼엔과 프엉의 사랑의 행방(Thân phận của tình yêu)을 지켜볼 때쯤에 이르러서는 그 여린 영혼의 무게와 전쟁조차 파괴할 수 없는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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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끊임없이 물살을 거슬러 과거로 나아가려는 배와도 같다. 내게 미래는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있다.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새로운 삶도, 새로운 시대도, 미래의 희망도 아니다. 나를 살게 하고 지금의 이 우스꽝스런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과거의 드라마다. 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추억의 힘 때문이다."
"어둑한 황혼녘에 끼엔은 숲 가장자리에 앉았다. 세월을 거슬러 그날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그는 눈을 감고 기억의 먼 저편을 응시했다. 손바닥에 수류탄의 무게가 전해져왔다. 그때 안전핀을 풀고도 던질 수 없었던 그 수류탄의 무게가. 그러나 그때의 무서운 광경 앞에서 가슴 깊숙이 치밀어오르던 공포와 아픔, 증오와 분노, 그리고 야만과 폭력에 대한 충동은 이제 되살아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슬픔뿐이었다. 거대한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쟁의 슬픔……."
"어둑한 황혼녘에 끼엔은 숲 가장자리에 앉았다. 세월을 거슬러 그날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그는 눈을 감고 기억의 먼 저편을 응시했다. 손바닥에 수류탄의 무게가 전해져왔다. 그때 안전핀을 풀고도 던질 수 없었던 그 수류탄의 무게가. 그러나 그때의 무서운 광경 앞에서 가슴 깊숙이 치밀어오르던 공포와 아픔, 증오와 분노, 그리고 야만과 폭력에 대한 충동은 이제 되살아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슬픔뿐이었다. 거대한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쟁의 슬픔……."
중첩적이고도, 비선형적인 끼엔의 회상은 소설 초반부터 겹겹이 쌓여 조금씩 그 슬픔을 배어가게 합니다. 실종자 수색대의 여정에서 스며드는 혼령의 숨결과 인간이 만들어낸 슬픔과 절망밖에 없는 세상의 초상이 겹쳐집니다. 그 홍강 너머로 사라지는 쓸쓸한 석양 같은 향수는 어느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습니다. 더 이상 슬픔이 아닌 가슴 찢어지는 고통으로 변하기 전에 또 다른 과거로 떠나야 합니다. 시들고 퇴색한 존재들과 관념적이고 잊힌 감정들의 마지막 망명지로.
하지만 상상과 영혼이 만들어내는 그의 음울한 소설 아니 모든 행복과 고통의 피안에 서 있는 도도한 슬픔은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회한과 죄책감 속에 점점 소멸하는 영혼을 따라가다 끼엔과 프엉의 사랑의 행방(Thân phận của tình yêu)을 지켜볼 때쯤에 이르러서는 그 여린 영혼의 무게와 전쟁조차 파괴할 수 없는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2006/05/24 01:22
2006/05/24 01:22
tags: Bao Ninh, Book, Novel, The Sorrow of War, Vietnam, Vietnam War
Posted by lunamoth on 2006/05/2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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