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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9 퀴즈쇼 | 김영하 (7)
2007/09/29 오디오북 Audiobook (8)
2007/09/04 TNC 책 나누기 이벤트에 참가합니다 (2)
2007/08/08 대화, 미소, 샌드위치 그리고 담배 (6)
2007/07/13 애수의 소야곡 (6)

| 퀴즈쇼 | 김영하  [나의 서재]

퀴즈쇼
"어떤 질문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퀴즈도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의 거의 모든 질문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p. 70.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1"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를 읽으며 그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답변을 생각한다. "자기 대답을 갖고 있는 젊은이를 원하는" 세상에서, "틀리더라도 일단 자기 답을 준비해둬야" 할 테니. 이 노련한 작가 – 아니 이제 노회한 작가라고 해야 할까? 오래전 이명원님의 글2우석훈님의 포스트(!)가 묘하게 겹쳐 보였다 – 의 노련한 청춘 연가이자 순애보이자 성장소설이자 위로사인 소설을 숨 가쁘게 읽으며, 예의 "유사 연상의 잔치3"와 콜라주의 습속에 사로잡힌다.

"저수지에서 건져" 낸듯한 "88만원 세대" 이민수 군의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을" 짧지 않은 연대기가 펼쳐진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부채를 떠안고 혼자가 된 채 고시원 쪽방과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고, 인터넷 퀴즈방에 몰입하다, "벽 속의 요정"과 귓속말을 나눈다. "오프라인" 퀴즈쇼에 나간 인연으로 "벽 속의 요정" 서지원과 정체불명 "회사"의 에이전트 이춘성을 만나게 되고, 그 와중에 고시원에서 만난 "옆방녀"와 "회사" 속에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벽 속의 요정
"빛이 나오고, 소리가 들려오고, 음악이 나오는, 세상을 엿보고, 세상도 나를 훔쳐보는 내 창4"의 이야기를 다시금 만난다.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과 연애소설" 로써 그들에 대한 헌사라는 작가의 말처럼, 구글과 위키피디어에서 검색하고 《무한도전》과 《소프라노스》 보고 MUSE를 듣는 이 시대 속의 그 "집단 무의식5"의 생태를 그려낸다. "프리지아 한 다발을 들고 시티극장 앞에서6"는 아니더라도, 그 시절 이후로 여전히 그들은 "베티를 만나러7" 가고 있을 것이니.

"채팅을 하며 우리는 우리의 말과 사랑에 빠지고", "커플 미니홈피 같은 것을 만들어 아무도 기뻐해 주지 않는 둘 만의 승리를 즐"긴다. "서로의 영혼으로 떠나는 모험"속에서 "진심으로 이해받기를 원하는"이와 "완벽하게 자기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애정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이의 만남. 어쩌면 SF 소설 얘기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하지만, 오래전에 보낸 메시지는 계속 도착"하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엔 처음 만나 영원히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8"다.

다시 민수와 지원.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라며 '나'를 다독이지만 해설의 말처럼 "휘발될 기쁨과 날카로운 고통"의 여운이 낮게 깔린다. 아마도 그 지점에 옆방녀의 현실이 위치할 것이다.


흰개미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소수독과점의 경제구조, 양극화 현상, 비정규직의 전면화 등 '삶의 자본화', 또는 '삶의 생존 전략화'라고 총칭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젊음의 고단한 세상살이9"와 "신빈곤계급에 대한 도시생태학10"으로 명징하게 정리되는 순간, 또 박제하는 순간 어쩌면 '나'처럼 "명백히 자살의 예감을 풍기며 허망한 눈빛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을 그대로 놓아버리11"는 우를 범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계"로 돌아와서 "돌아갈 곳 없는 싸구려 용병"의 삶을 사는 고시원 옆방녀와 "직장, 집, 부모, 미래에 대한 확신 같은 것들"이 결여된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닌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이자 "글로벌 경제 시대"에 "국제 경제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이십 대 후반의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언젠가 떠나게 되고 완전히 잊어버릴 그 정거장 같은" 어느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저 자신을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말을 사줄 남자"도 아닌 "말을 들어주지 못한" '나'는 뒤늦게서야 자신을 알게 된다. "나는 옆방녀의 옆방에 살던 남자"라는 것을. 그럼에…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의 책, 오늘의 나
"몸을 바꿔야 해12" "회사"에서 '유리'는 '나'에게 퀴즈쇼를 위한 선험조건을 얘기한다13. 《오픈 유어 아이즈 Abre los ojos》 의 자각몽14과 가상현실15, 「피뢰침」 속 동호회, 그리고 스타리그가 겹쳐 보이는 '회사'를 지나오고 '나'는 다시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한다. "반복되는 건 없는 일회용 같은 인생"이라 생각하던 신념을 복기하며 나름의 답을 찾아가게 된다.

"일간지 경제면 같은 세계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벽장을 가진 사람"으로 "내가 정말 사랑했던 것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길" 원했던 꿈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으며", "한 번도 입 밖에 내서 말해본 적"은 없던 '나'는 '회사'에서 배운 한 가지를 지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우린 기대에 대한 피로감에 대한 변명16을 해보곤 하지만, "유독한 희망 대신 달콤한 무위로의 도피"가 답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 퀴즈쇼가 건네는 애절한 동질감도, 통렬한 현실도, 절실한 질문도, 자연스레…

Footnote.
  1.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1996, 141쪽. [Back]
  2. 이명원, 「김영하, 지식인, 문학권력」, 『해독』, 새움, 2001, 26쪽 [Back]
  3. 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열린책들, 1990, 669쪽. [Back]
  4. 김영하, 「바람이 분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1999, 78쪽. [Back]
  5. 김영하, 「인터넷」, 『포스트잇』, 현대문학, 2002, 58쪽. [Back]
  6. 김경욱, 「베티를 만나러 가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문학동네, 1999, 23쪽. [Back]
  7. 김경욱, 「베티를 만나러 가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문학동네, 1999, 24쪽. [Back]
  8. 이응준, 「이제 나무묘지로 간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민음사, 2005, 45쪽. [Back]
  9. 복도훈, 「해설 |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 『퀴즈쇼』, 문학동네, 2007, 460쪽. [Back]
  10. 복도훈, 「해설 |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 『퀴즈쇼』, 문학동네, 2007, 449쪽. [Back]
  11. 김영하, 「허영」, 『포스트잇』, 현대문학, 2002, 97쪽. [Back]
  12. 김영하, 「도마뱀」, 『호출』, 문학동네, 1997, 11쪽. [Back]
  13. “아직 모, 몸이, 몸이 안 바뀌어서 그래”,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341쪽. [Back]
  14. “이 모든 게 한 편의 생생한 꿈일지도 모른다는 것”,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352쪽. [Back]
  15. “잠이 들었을 거야. 그때 뇌를 배, 배, 백업했을 거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 정도 기술은 이미 90년대 초에 개발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정보는 지금 여기, 알레프로 전송이 된 거지.“,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246쪽. [Back]
  16. “너무 지나친 기대에 대한 일종의 피로가 있는 것 같아.” “언제나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 ‘하나’를 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결국 사람들을 자꾸 실망시키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아.“,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256쪽. [Back]
2007/10/29 01:05 2007/10/2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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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07/10/2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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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오북 Audiobook  [나의 서재]

배우 유준상을 볼 때면, 오래전 『그해 겨울』의 극화 드라마 속에서 앳된 모습의 영훈이 먼저 떠오르고, 제갈량을 연상할라 치면,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속 모습과 KOEI 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속 모습이 절묘하게 겹쳐집니다. 언젠가 얘기했듯이 문학과 그에 대한 극화, 형상화, 현현 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까닭도, 머릿속으로만 쌓아온 상상들이 하나의 조각 모음으로 구체화되어 눈앞에 자리하게 되는 순간을 즐기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전차로, 며칠 전 우연히 오디오북 Audiobook 이란 게 생각나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위키피디어의 설명대로 저 유구했던? 테이프와 CD 를 거쳐서 이제는 시대에 맞게, 물론 이미 오래전에 MP3, iPod, Podcast 의 단계로 진입을 했더군요. 최근에 지하철 광고로 얼핏 스친 국내 오디오북 업체 Audien 을 들러보고, 돌아다녀 보니 멜론, 도시락, 교보문고 제노마드, 북리슨 등 어느 정도 움직임이 엿보였습니다.

"국내 오디오북의 발전 가능성과 과제"에서 황선호님이 지적한 선결 과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6년 전 Djuna의 "오디오북"의 언급에서 KBS 낭독의 발견EBS 오디오북을 지나서 몇 걸음 더 나아갔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번 기대를 걸어봅니다. (물론 국내 도서 시장과 오디오북 특성상 실용서 다이제스트 쪽으로 집중되지는 않을까 짧은 우려도 됩니다만 J)

오디오북의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iplawyer님의 "CC 라이선스하의 오디오북 사이트"와 ilovja님의 "오디오북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다시금 웨어즈 탐색의 묘미와 컬렉터로서의 소유욕이 생기기도 하네요 :P 기가대 MP3P를 놀려두고 있는 분이라면 참고하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요약본/비요약본의 구분이 있다는 것도 Audible.com 를 접하고 샘플을 들어보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아쉽게도 구입하고자 했던 오디오북은 해외 판매 제한에 걸려서 샘플로만 만족해야 했고요. (iTunes 의 오디오북도 물론 그림의 떡)

그래도 팀 커리가 연기/낭독하는 『푸코의 진자』를 듣고 있노라니, 비록 요약본이라 원작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긴장감 넘치는 재현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그것대로 의미가 충분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걸 보면 저의 오디오북 접근 방향은 역시 라디오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는 듯싶습니다. J

“The Plan. The Plan is real ! They’re after me !!”

2007/09/29 01:37 2007/09/2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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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NC 책 나누기 이벤트에 참가합니다  [나의 서재]

TNC 2주년 기념 이벤트! 2권씩 나눠요
태터앤컴퍼니 창사 2주년을 기념하여 책 나누기 이벤트가 마련되었습니다. TNC 구성원 분들이 직접 소장하고 있었던 책들을 기증해주셨고,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도 많은 책을 협찬해주셨습니다. 예전에 썼던 책 관련 글이나 이벤트 소식을 담은 글을 트랙백으로 보내고, 댓글로 원하는 책을 신청하면 된다고 합니다.

제가 나누는 책은 얼마 전부터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이응준님의 소설집 약혼소심한 아나키;로서 다시 읽게된 숀 쉬한의 우리시대의 아나키즘 두 권입니다. 많은 응모? 부탁드리겠습니다 J

2007/09/04 19:27 2007/09/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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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미소, 샌드위치 그리고 담배  [나의 서재]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 사설탐정 역할을 떠맡은 좌절한 소설가 퀸은 편집증적인 노인 스틸먼을 추적하게 됩니다. 작가로서, 화자로서, 소설 속 사립탐정으로서 다층적인 위치에 자리하는 폴 오스터의 계보도를 짜맞추는 것이 하나의 묘미였다면, 스틸먼이 배회했던 구역을 간단히 도식화해서 의미를 찾아가 보려는 퀸의 편집증 또한 『뉴욕 3부작』의 재밋거리였습니다. *spoiler warning* 제가 《호미사이드》에서의 종이 쪼가리, 『푸코의 진자』에서의 앙골프의 문서 같은 것?에 끌리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지요. 퀸은 스틸먼의 이동경로를 지도위에 그려나가다 글자로 인식하고 하나의 문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OWEROFBAB 이 바벨탑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지요. 확증 편향이던가요. "그가 글자를 본 것은 단지 그것들을 보려고 했기 때문"일 겁니다. 바비와 까소봉이 그랬듯이요.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사설탐정 추적극을 갑작스레 떠올린 것은 언젠가 봤던 기발하고도 편리?한 어떤 사진 이야기 때문입니다 (물론 Take Care of Yourself 보다는 무딘듯싶지만). 흥신소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라고 의뢰하고, 뭣 모르는 사설탐정은 의뢰인인 그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는 소피 칼The detective 이야기입니다. "라이프 캐싱"과 "프라이버시 보호 데이터 마이닝" 얘깃거리를 지나서 《Ergo Proxy》 분위기 구현 사례로써도 쓸만한 예가 될 듯싶더군요.

이런 폴 오스터와 소피 칼의 접점에 대한 힌트는 『뉴욕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게 됐습니다. 폴 오스터에게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달라고 요청해 그대로 행동한 소피 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요. 이 "뉴욕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소피 칼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될 교육 입문서"는 미소 짓기, 낯선 이들에게 말 건네기, 샌드위치와 담배 나눠주기, 한 장소를 택해 1시간씩 머무르기를 권합니다. 간간이 찍혀있는 사진들은 오기 렌을 금방이라도 만날 것만 같은 《Smoke》 속 아련한 분위기 그대로이고, 시시때때로 조우하게 되는 사람들과 조언란 댓글들이 세상과 타자를 향한 조그마한 관심과 다가섬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이런 "멋진 전복들"이 "도로포장 벽돌 밑에 해변"을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쯤에서 "현재라는 선물"에 대한 얘기가 나올 법도 싶지만, 데일 쿠퍼의 한마디만을 걸어두고 싶네요 J
2007/08/08 02:16 2007/08/08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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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07/08/08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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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수의 소야곡  [길 위의 이야기]

어딘가에 묶여 있음을 비로소 실감할 때가 있다. 24인용 천막 한 귀퉁이 붙어 있던 명패와 적절히 분배된 편제 하에 생경한 보직 옆의 내 이름을 본 그날도 그러했으리라. 포병부대 인사과에서 민사대대 치안반으로. 추억 속으로 흩어진 이들은 거대한 망상조직 하에 그렇게 다시 모여, 금세 끝날 것 같지 않은 지친 잠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선배님 좌상탄입니다. 빗소리는 폭음과 화음을 맞춰서 간헐적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차박차박, 텅텅. 두발만이 표적지를 비켜갔다. 쉼 없이 아니 느슨하게 이어지는 식사와 잠, 교육들. 그리고 그 속에서 빛난 한 귀순용사의 강연, "모더니티가 튼실하게 현존재들의 삶을 틀어쥐고 있는 지금", 그가 말하는 "이 시대의 스펙터클"이 귓가를 잠시나마 공명케 했다. 한명의 아저씨와 한명의 동창을 만났고, 반권의 소설책과 두갑반의 담배를 피워냈다. 그리고는 PT 사이로 스며든 유우머 폴더의 헛헛한 플래시처럼, 나직이 전쟁의 상흔을 가리는 재건부대의 윤색화를 보며 세 번째 동원훈련을 마쳤다. 그래 여기까지만.


"너는 알아? 몰라? 모르지. 나도 모른다. 그치만 이건 알겠어. 너 때문은 아니라는 거. 그건 남희도 마찬가지지. 우리가 그랬다면 그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내 사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까 병신 짓 그만 하고,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기다리지 말고, 얼른 와라. 우리가 밥 먹듯이 하는 낙법이란 게 뭐냐. 팔 한쪽을 부러뜨리는 대신 목숨을 구하는 거 아니냐." 1

이 문장이 한 주 내내 나를 채근하고 있다. 애먼 사소취대 얘기는 물론 아닐진대, 《황색눈물》에서 에이스케가 말하는 교훈조의 성장통에 대한 긍정보다도, 《미스 리틀 선샤인》 의 프랭크의 경구보다도 한없이 포근한 위로로 다가왔다.

그 진득한 울림 속에서 안심하고 있었지만, 빗소리에 잦아드는 어둠 속에서 다가온 외마디 정권에 하릴없이 스러진 채로 허울좋게 방기했었던 이들을 복기할 수밖에 없었다. 차박차박, 텅텅.

"먼 훗날 나는 사랑했던 그녀가 아니라, 그게 사랑이었음을 겨우 깨닫고 쓸쓸해하는 나를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고통이 염주알처럼 단단해진 밤, 나는 달에 엎드려 흐느낀다." 2


맨 처음

맨 처음 고양이를 향해 나비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을 거야.

나는 너무 오래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에게
이렇게 속삭여.

나비야—
나비야—

붉은 지붕에 오르렴.
올라
흐르는 흰 구름을 보렴.

어서 날아가라,
내 나비야.

– 이응준, 「맨 처음」, 『애인』, 민음사, 2012


Footnote.
  1. 이응준,「애수의 소야곡」,『약혼』, 문학동네, 2006, 93쪽. [Back]
  2. 이응준,「인형이 불탄 자리」,『약혼』, 문학동네, 2006, 235쪽. [Back]
2007/07/13 02:22 2007/07/13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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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07/07/13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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