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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서재 : total 77 posts
2014/01/07 De Angelis (1)
2014/01/07 이응준,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중에서 
2014/01/07 37 
2013/11/27 최후의 후식 - 심보선 
2013/09/01 2013/08/30 이응준 연작 소설 『밤의 첼로』 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 & 낭독극 @ 명동 삼일로 창고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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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 Angelis  [나의 서재]

"실례지만 경위님은 살인 사건 전문 수사관입니까, 아니면 정치 사건 전문입니까." 벨보가 물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어젯밤에는 살인 사건 전문인 내 동료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르덴티의 기록에서 여죄가 자꾸 나오니까 내 동료는 이 사건을 내게 떠넘긴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정치 담당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치 담당으로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간단하지 않더군요. 탐정 소설이 아니라서요."

"그건 나도 압니다."  벨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대답했다.

“Excuse me,” Belbo asked, “but just out of curiosity, are you homicide or political?’’

“Good question. My opposite number from homicide was here last night. After they found a bit more on Ardenti in the records, he turned the case over to me. Yes, I’m from political. But I’m really not sure I’m the right man. Life isn’t simple, the way it is in detective stories.”

“I guess not,” Belbo said, shaking his hand.

이 장면도 『푸코의 진자』 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까소봉, 벨보, 디오탈레비도 매력적이지만, 데 안젤리스 경위도 왠지 모르게 끌리더군요. 무언가 소시민의 마치 《스파이 게임》 에서 한번 좌절하고 이제는 닳고 닳은 생활인이 된 톰 비숍 요원이나, 《한자와 나오키》 에서 약하게 그려지는 콘도 같은 모습이랄까요? 가끔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모든 게 적절한 설명으로 이뤄진, 동기와 원인과 현상과 결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추리소설 속 세계 같은 안전한? 세상을 꿈꾸지만, 이미 그런 세계가 아님을 깨달은, 그런 인물.
2014/01/07 23:51 2014/01/0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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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14/01/0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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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준,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중에서  [나의 서재]


 ……그리고 인영씨. 인도 사람들은 무척 가난합니다. 게다가 그 가난은 전혀 가망 없어 보이구요. 하지만 이유 있는 가난입니다. 성스러운 게으름입니다. 그들은 그저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된 내세가 존재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견디기 때문이죠.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거리에 사람이 많습니다. 엄청난 인구라서기보다는, 이네들은 본시 집 밖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길의 의미를 알고 있는거죠.

 드넓은 땅덩어리에, 유구한 인류 문명의 진원지, 인간보다는 소를 더 신성시 여기고, 아직도 중세와 고대가 공존하며, 카스트 제도를 아무런 불만 없이 지켜나가는 민족. 나는 이들의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 속에서, 신비스럽다는 말을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갠지스 강은 몸을 씻고 예배드리는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립니다. 한쪽에서는 죽은 자를 태워, 그 재를 강가로 흘려보내고 있구요. 사자(死者)의 허망함을 비누 삼아, 더러운 육신과 영혼을 정갈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린 죽어서 무엇이 되는 걸까요? 이 불결하기 그지없고 비합리로 가득 찬 대륙은, 한번도 그런 심오한 의문에 사로잡혀보지 못했던 나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머리가 한 틈새씩 서서히 벌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9Km 떨어진 곳에는,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을 했다는 사르나트가 있습니다. 큰 가로수 사이로 우뚝 서 있는 다메크 대탑(大塔)이 웅장한 자태로 신자들을 맞이합니다. 스물여덟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은 보리수가 울창한 가운데 적갈색으로 눈부십니다. 혜초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더군요. 그리고 부다가야. 샤카족의 왕조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인생의 고뇌를 통감하고 보리수 아래서 해탈한 곳이 바로 부다가야입니다. 부처님이 앉아 있던 단(壇) 주위는 순례자들이 고행길에서 가져온 꽃들로 만발합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얼굴과 다른 언어로 탑돌이를 합니다. 소원을 빌면서요.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곧 팔아야 했죠. 외국인, 특히 여자 외국인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인도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나를 향해 악의 없는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뭔 줄 아세요? 사막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습니다.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나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달빛 속으로라도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우리 고달픈 윤회의 끈은 언제나 풀어질까요. 이런 욕심마저 버리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 하겠죠. 내 시(詩)의 치부는, 그런 꿈의 가면을 쓰고 썩어 갔던 것이 아닐까요.

 인영씨의 지금이 그러하듯, 나도 내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떠돌고 있고, 인영씨는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거겠지요. 한낱 육체의 일이지만요.

 우리는 서로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겼더랬습니다. 나는 인영씨의 느닷없는 절필낙향(絶筆落鄕)을 납득할 수 없었고, 인영씬 이 위험천만하고 기약 없는 먼지투성이 여행에 분노했지요. 그것이 우리 사랑의 결별이었다 해도, 나 지금 후회하지 않습니다. 떠난지 석 달이 다 되어가는 이제야 비로소, 예전에 결코 깨닫지 못했던 인영씨의 어둠과 고독이, 인화되기 직전의 사진처럼 가물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더 지난다 해서, 내가 그걸 완벽히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장담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어요.

 가끔, 어쩌면 자주, 인영씨와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립니다. 참 잘해주었죠. 뒤늦게라도 이렇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둘이 나누었던 이야기와, 또 때론 서로를 할퀴었던 애증의 열정이, 아주 곱고 영롱한 추억의 사리로 남게 해달라고, 나는 탑을 돌며 누군가를 향해 빌었습니다.

 이렇게 긴 편지를, 느닷없이, 좀 복잡한 과정을 통해 보내는 것은, 다만 당분간이라 하더라도, 혹은 영원히라도, 우리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헤어졌던 까닭입니다.

 그곳의 생활은 아름다운지요? 어떤 결론에 이르든지, 인영씨가 삶을 좀더 존중하게 되었던 한 시절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타지마할을 알고 있겠죠? 새파란 하늘 높이 솟은 흰색 돔 Dome,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한 대리석, 색색의 보석들. 샤 자한 황제가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지구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무덤을요. 축조하는 데만도 무려 22년이 걸렸다는군요. 그 사랑의 힘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날이 저물고 뜨겁던 태양이 아그라 성 너머로 기울어갈 즈음, 달빛에 비친 타지마할은 장관이라 들었습니다.

 내일,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의미를 찾아 타지마할로 갈 것입니다.

 어느날, 길에서, 당신의 친구, 지원.

—-

 나는 지금 무인도에 표류해 있다. 배가 사고를 만난 것은 분명 동해 바다 위에서였는데, 이곳의 풍경은 언젠가 엽서에서 보았던 하와이 같다. 여객선에선, 좀 수다가 심한 편이긴해도 미모가 뛰어난 여자와, 칵테일을 스무 잔이나 마셨더랬다. 이혼 기념 여행을 하는 중이라던 그 여자는, 자기 나이가 나보다도 어리다며 노골적으로 유혹했다. 뭔가 미심쩍어,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백을 열고 주민등록증을 훔쳐보니, 이런, 서른다섯 살이나 먹은 여장 남자(女裝男子)였다! 염려해줄 필요는 없다. 곧 배가 뒤집혔으니까. 그 다음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녀, 아니 그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어디에서든 살아 있다면 좋겠다. 진심이다. 그리고, 동성이건 이성이건 간에, 착한 짝을 만나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왜냐고? 한없이 외로워 보였으니까. 이유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 섬이 참 마음에 든다. 하얗고 영리한 개 한 마리와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고 있는데, 아침이면 녀석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섬 전체를 한바퀴씩 돈다. 배가 고프면 여기저기 주렁주렁 달린 열매를 따먹고, 밤엔 이불 따위가 없어도 따듯하기만 하다. 평생 이렇게 지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종일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시를 쓴다. 모두 너를 위한 사랑의 노래들이야. 네가 쓰곤 하던 그런 어려운 것들과는 차원이 아주 다르다. 만약 내가 도시로 다시 돌아가 출판한다면 틀림없이 베스트셀러가 될 테지만, 이 아름다운 섬은 일체의 욕심을 허무하게 만든다.

 루마니아 공산 치하의 혹독한 감옥에서, 리처드 범브란트라는 목사가 천여 편의 시를 지어 외웠다고 언젠가 네게 얘기해준 일 있지? 나도 잠들기 직전에, 내가 쓴 시들을 모두 외우고는 흙먼지로 덮어 지워버린다. 그러면, 마치 내가 한 권의 시집(詩集)이 된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가끔은 이런 생각에도 잠겨본다. 만일 내게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 종이와 펜이 있다면, 내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써넣어 바다로 던지고 싶다는, 그런다면, 인도의 강가에서 네가 목말라 그 작은 손으로 물을 떠마실 때, 건져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난 깨닫는다. 예전에 내가 너더러 사랑한다고 했던 모든 고백들이 거짓이었다는 걸. 그래서 지금 진짜로 고백하고자 한다. 널 사랑한다. 모든 세월에 밤이 있는 것처럼, 지난날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너는 거기서 승려가 될 것 같은 편지를 보내왔지만, 해탈이란 말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슬프게 들리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 황당한 진실은 애초부터 없는 거란 말이다. 그러니 너도 표류하길 바란다. 그래서 내게로 오렴 와서, 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두고두고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손때가 묻도록 읽어다오.

 너의 자전거를 힘차게 밀어주고 싶다. 바다와 산이 있는, 오래전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던, 달의 뒤편으로.

 어느날, 섬에서, 널 사랑하는, 인영.

이응준,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중에서
2014/01/07 23:18 2014/01/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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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14/01/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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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나의 서재]


37

 

Whoever reflects on four things, it were better he had never been born: that which is above, that which is below, that which is before, and that which is after.

—Talmud, Hagigah 2.1

 

I showed up at Garamond the morning they were installing Abu-lafia, as Belbo and Diotallevi were lost in a diatribe about the names of God, and Gudrun suspiciously watched the men who were introducing this new, disturbing presence among the increasingly dusty piles of manuscripts.

“Sit down, Casaubon. Here are the plans for our history of metals.” We were left alone, and Belbo showed me indexes, chapter outlines, suggested layouts. I was to read the texts and find illustrations. I mentioned several Milan libraries that seemed promising sources.

“That won’t be enough,” Belbo said. “You’ll have to visit other places, too. The science museum in Munich, for instance, has a splendid photographic archive. In Paris there’s the Conservatoire des Arts et Metiers. I’d go back there myself, if I had time.”

“Interesting?”

“Disturbing. The triumph of the machine, housed in a Gothic church…” He hesitated, realigned some papers on his desk. Then, as if afraid of giving too much importance to the statement, he said, “And there’s the Pendulum.”

“What pendulum?”

“The Pendulum. Foucault’s Pendulum.”

And he described it to me, just as I saw it two days ago, Saturday. Maybe I saw it the way I saw it because Belbo had prepared me for the sight. But at the time I must not have shown much enthusiasm, because Belbo looked at me as if I were a man who, seeing the Sistine Chapel, asks: Is this all?

“It may be the atmosphere—that it’s in a church—but, believe me, you feel a very strong sensation. The idea that everything else is in motion and up above is the only fixed point in the universe…For those who have no faith, it’s a way of finding God again, and without challenging their unbelief, because it is a null pole. It can be very comforting for people of my generation, who ate disappointment for breakfast, lunch, and dinner. ‘‘

“My generation ate even more disappointment.”

“Don’t brag. Anyway, you’re wrong. For you it was just a phase. You sang the ‘Carmagnole,’ and then you all met in the Vended. For us it was different. First there was Fascism, and even if we were kids and saw it as an adventure story, our nation’s immortal destiny was a fixed point. The next fixed point was the Resistance, especially for people like me, who observed it from the outside and turned it into a rite of passage, the return of spring—like an equinox or a solstice; I always get them mixed up…For some, the next thing was God; for some, the working class; and for many, both. Intellectuals felt good contemplating the handsome worker, healthy, strong, ready to remake the world. And now, as you’ve seen for yourself, workers exist, but not the working class. Perhaps it was killed in Hungary. Then came your generation. For you personally, what happened was natural; it probably seemed like a holiday. But not for those my age. For us, it was a settling of scores, a time of remorse, repentance, regeneration. We had failed, and you were arriving with your enthusiasm, courage, self-criticism. Bringing hope to us, who by then were thirty-five or forty, hope and humiliation, but still hope. We had to be like you, even at the price of starting over from the beginning. We stopped wearing ties, we threw away our trench coats and bought secondhand duffle coats. Some quit their jobs rather than serve the Establishment…”

He lit a cigarette and pretended that he had only been pretending bitterness. An apology for letting himself go.

“And then you gave it all up. We, with our penitential pilgrimages to Buchenwald, refused to write advertising copy for Coca-Cola because we were antifascists. We were content to work for peanuts at Garamond, because at least books were for the people. But you, to avenge yourselves on the bourgeoisie you hadn’t managed to overthrow, sold them videocassettes and fanzines, brainwashed them with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You’ve made us buy, at a discount, your copies of the thought of Chairman Mao, and used the money to purchase fireworks for the celebration of the new creativity. Shamelessly. While we spent our lives being ashamed. You tricked us, you didn’t represent purity; it was only adolescent acne. You made us feel like worms because we lacked the courage to face the Bolivian militia, and you started shooting a few poor bastards in the back while they were walking down the street. Ten years ago, we had to lie to get you out of jail; you lied to send your friends to jail. That’s why I like this machine: it’s stupid, it doesn’t believe, it doesn’t make me believe, it just does what I tell it. Stupid me, stupid machine. An honest relationship.”



“But I—”

“You’re innocent, Casaubon. You ran away instead of throwing stones, you got your degree, you didn’t shoot anybody. Yet a few years ago I felt you, too, were blackmailing me. Nothing personal, just generational cycles. And then last year, when I saw the Pendulum, I understood everything.”

“Everything?”

“Almost everything. You see, Casaubon, even the Pendulum is a false prophet. You look at it, you think it’s the only fixed point in the cosmos, but if you detach it from the ceiling of the Conservatoire and hang it in a brothel, it works just the same. And there are other pendulums: there’s one in New York, in the UN building, there’s one in the science museum in San Francisco, and God knows how many others. Wherever you put it, Foucault’s Pendulum swings from a motionless point while the earth rotates beneath it. Every point of the universe is a fixed point: all you have to do is hang the Pendulum from it.”

“God is everywhere?”

“In a sense, yes. That’s why the Pendulum disturbs me. It promises the infinite, but where to put the infinite is left to me. So it isn’t enough to worship the Pendulum; you still have to make a decision, you have to find the best point for it. And yet…”

“And yet?”

“And yet…You’re not taking me seriously by any chance, are you, Casaubon? No, I can rest easy; we’re not the type to take things seriously…Well, as I was saying, the feeling you have is that you’ve spent a lifetime hanging the Pendulum in many places, and it’s never worked, but there, in the Conservatoire, it works…Do you think there are special places in the universe? On the ceiling of this room, for example? No, nobody would believe that. You need atmosphere. I don’t know, maybe we’re always looking for the right place, maybe it’s within reach, but we don’t recognize it. Maybe, to recognize it, we have to believe in it. Well, let’s go see Signor Garamond.”

“To hang the Pendulum?”

“Ah, human folly! Now we have to be serious. If you’re going to be paid, the boss must see you, touch you, sniff you, and say you’ll do. Come and let the boss touch you; the boss’s touch heals scrofula.”


37

사람은 네 가지를 의심할 바에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 그 네 가지가 무엇인고 하니, 곧 위에 있는 것, 아래에 있는 것, 앞에 있는 것, 뒤에 있는 것을 이름이다. - 『탈무드』, 하기가 2. 1

  내가 가라몬드 출판사에 첫 출근한 날 아침, 사람들은 아불라피아를 설치하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벨보와 디오탈레비는 거명까지 해가면서 신들을 씹느라고 정신이 업었고, 구드룬은 불안한 시선으로 먼지투성이인 원고 더미 사이에다 이 요상한 물건을 설치하는 사람들을 좇고 있었다.

  ”앉게 까소봉, 금속사 출판 계획, 초안이 나왔네.”

  단둘이 앉게 되자 벨보는 색인과 각 장의 개요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배면 계획을 펼쳐 보였다. 내가 할 일은 본문을 읽고 도판거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나는 정보 자료가 꼭 있을 만한 밀라노의 몇몇 도서관  이름을 대었다.

  ”그걸로는 기별이 안 갈 테니 다른 곳도 뒤져 봐야지. 가령 뮌헨의 과학 박물관에는 사진에 관한 한 굉장한 고문서관이 있다네. 파리에는 국립 공예원 박물관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나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네.”

  ”재미있었나 보군요.”

  ”현란하지. 고딕 풍 교회에 우리 시대 기계 문명의 찬란한 승리가 숨쉬고 있다네…”

  그는 말을 이으려다가 책상 위에 놓인 문건을 추스르면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자기 말에 너무 무게를 싣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천천히 덧붙였다.

  ”… 그리고 진자가 있네”

  ”무슨 진자요?”

  ”진자 말이야. 푸코의 진자…”

  벨보는 이러면서 내가 이틀 전 토요일에 보았던 모양 그대로 그 진자를 묘사해 보였다. 아니, 내가 그 진자를 그런 모양으로 본 것은 벨보가 그렇게 보도록 미리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지나친 관심을 보인 것이 탈이었다. 벨보는, 내가 시스티나 성당을 다 구경하고, <이게 전부요> 하고 시담잖게 묻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면서 설명했다.

  ”푸코의 진자가 있는 곳이 교회여서, 말하자면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네. 이 진자를 보고 있으면, 이 세상 만물은 움직인다, 그러나 저 위, 우주 어딘가에는 불변하는 단 하나의 고정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 신심이 없는 사람도 이걸 보노라면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어 있어. 무신론을 청산하게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닐세. 왜냐… 그 불변하는 극점 역시 공일 테니까. 따라서 하루 세끼 절망을 먹고 사는 우리 세대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제 세대는 더 지독한 절망을 먹고 사는데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런 것은 아닐걸세. 당신 세대에 절망은 하나의 국면이거든. 당신 세대는 그래도 <까르마뉼>도 부르고 반동의 거리 방데 가로 뛰쳐나갈 수 있었거든.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달라. 우리 세대의 태초에는 파시즘이 있었네. 우리가 어린 시절이어서 그게 무슨 모험담처럼 들리기는 했어도, 어쨌든 우리에게는 우리 나라의 영원한 숙명에 대한 인식이 하나의 고정점으로 존재하고 있었네. 그 다음의 고정점은 레지스땅스… 레지스땅스 운동을 구경하고 있던 나 같은 방관자 세대에게 그것을 통과의례, 혹은 춘분제냐 하지제냐… 나는 이걸 종종 혼동하거든, 하여튼 그런 것이었네. 그 다음의 고정점을 신으로 옮긴 사람도 있고, 노동 계급으로 옮긴 사람도 있네. 이 양자를 고정점으로 삼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지식인들은, 세계를 개조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건강하고 잘생긴 노동자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신이 나고는 했네. 그러나 지금은, 당신도 잘 알겠지만, 노동자는 있어도 노동 계급은 없네. 어쩌면 헝가리 같은 데서 집단으로 살해당한 것인지도 모르지. 그 다음에 당신네 세대가 왔어. 당신들 세대에게, 그 시대 일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휴가 즐기는 기분으로 시위에 가담했을 테지. 그러나 우리 세대에게는 그렇지 못했어. 우리에게 시위는 보복, 가책, 후회, 갱생의 순간순간이었네. 우리는 처절하게 실패했는데 당신네 세대는 열성과 용기와 자기 비판으로 무장하고 나타나 당시 30대 후반 아니면 40대 초반이던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희망과 굴욕감이었네만 어쨌든 희망은 있어 보였지.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어도 당신네들을 본받아야 했네. 그래서 우리는 넥타이를 풀고, 트렌치 코트를 벗어 던지고 중고품 반코트를 샀네. 제도권 섬기는 것이 싫다면서 직장을 때려치운 사람들도 있었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지나치게 열을 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눈치였다. 자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일종의 사죄 표현 같은 것이었다.

  ”… 그런데 당신들 세대 역시 포기하고 마는군. 우리는 아우슈비츠를 향하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코카콜라의 광고 카피 쓰는 것도 거부했네. 반파시스트로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던 거지. 우리 세대는 가라몬드 출판사에서 일하는 데 만족하네. 적어도 책은 민중을 위한것이니까… 그러나 당신네 세대는, 당신네 세대가 전복시키는 데 실패한 부르주아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이들에게 비디오 카세트와 오토바이 광을 위한 잡지를 팔고, 선과 오토바이 정비 기술로 이들을 세뇌시켰네. 나는 당신네 세대가 모택동의 사상을 복사해서 우리에게 헐값으로 팔고, 그 돈으로 폭죽을 사서 새세대의 창의력을 자축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우리가 부끄러워하면서 인생을 조심조심 살고 있을 동안에 당신네 세대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일을 했네. 우리에게는 볼리비아 민병대와 맞설 용기가 없었지만 당신네 세대는 거리를 걷고 있는 불쌍한 볼리비아 민병대의 등을 쏘는 짓도 사양하지 않았네. 10년 전에 우리 세대는 당신네 세대를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네만, 당신네 세대는 친구들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네, 그래서 나는 컴퓨터 같은 기계를 좋아하네. 컴퓨터는 어리석네. 믿지도 않고 내게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아. 내가 하라는 대로 할 뿐이지. 어리석은 나와 어리석은 기계의 관계… 정직한 관계 아닌가.”

  ”하지만 나는…”

  ”까소봉, 당신에게는 죄가 없어. 당신은 돌멩이를 던지는 대신 달아났고, 학위를 땄고, 아무도 쏜 일이 없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당신한테서 위협을 느끼고 있었네. 개인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세대간에 되풀이되는 위협 같은 것이었네. 그러다가 작년에 푸코의 진자를 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네.”

  ”모든 것인가요?”

  ”정직하게 말하면 거의 모든 것을… 까소봉, 그 진자까지도 가짜 예언자라네. 사람들은 그 진자를 바라보면서 우주 속에 있는 하나의 고정점을 상정하겠지만, 그걸 박물관 천장에서 떼어 내어 사창굴에 매달아 놓는다고 하더라도 진자의 움직임은 달라지지 않네. 뿐인가, 진자는 도처에 있네. 뉴욕의 유엔 본부에도 있고, 센프란시스코 박물관에도 있네. 진자는 도처에 있네. 어디에다 매달아 두든, 지구가 자전하는 한 푸코의 진자는 부동점을 중심으로 진동하게 되어 있네. 따라서 우주의 모든 점이 불변의 고정점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진자를 부동점에 걸어 놓기만 하면 되는 걸세.”

  ”신 또한 도처에 있다는 뜻이겠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진자가 나를 헛갈리게 하는군. 진자가 내게 숙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지. 내게도 무한자가 있다… 나의 무한자는 어디에다 걸어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 그러니까 진자를 섬기는 것으로는 안 돼. 나름의 진자를 어디에 걸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아직…”

  ”아직은?”

  ”그런데 아직은… 당신 내 말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 같군. 좋아, 상관없어. 우리 세대는 사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아닌 걸… 당신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수많은 곳에다 진자를 거는 일로 세월을 보냈지만 진자는 흔들리지 않더라, 그런데 공예원 박물관에서는 흔들리더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 당신은 우주에 특별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나? 가령, 이 방의 천장 어디에 특별한 한 점이 있는 것일까? 없어.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없어. 그래. 분위기가 중요할거라. 모르겠어. 우리는 늘 그 점을 찾고 있고, 실제로 그런 점은 우리 가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것은 그렇고, 가라몬드 사장을 만나러 가야겠지?”

  ”만나서 진자를 달아야겠지요?”

  ”농담이 아닐세. 지금부터는 좀 진지하게 굴 필요가 있네. 월급을 받으려면 사장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도록 몸을 맡길 수 있어야 하네. 가세. 가서 사장으로 하여금 당신을 좀 만지게 하세. 사장의 약손에는 연주창도 낫는다네.”
2014/01/07 23:10 2014/01/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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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14/01/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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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후식 - 심보선  [나의 서재]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자세로 태양이 수평선에 걸쳐 있다
식탁 위에 포도주를 쏟듯이 어둠이 번진다
소멸을 향해 돌진하는 별들이 무섭도록 밝다
우주의 낭하를 거닐던 창조주조차 옆으로 비켜선다
해변의 권태에는 뭔가 음악적인 것이 있다
파도가 파도를 탄주하며 하얗게 부서진다
수평선 너머에는 황혼으로 술을 빚는 주신(酒神)이 산다고 한다
비린내 나는 인간의 식탐을 가득 실은 배들이 근해를 얼쩡거린다
최후의 만찬 때 열두 제자는 음주와 식사를 끝까지 마쳤을까
식욕이 왕성한 베드로를 보고 예수는 울화가 치밀었다
지독하게 쓴맛이 네 혀의 뒷면을 영원토록 지배하리라
나는 모든 미래가 오늘의 치명적 오역이라고 믿는다
이제 곧 후식을 먹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을 가까스로 가르는 수평선 위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유다의 낯빛처럼 창백한 보름달

– 심보선, 「최후의 후식」,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2008
2013/11/27 22:52 2013/11/2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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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13/11/2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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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30 이응준 연작 소설 『밤의 첼로』 발간 기념 저자와의 만남 & 낭독극 @ 명동 삼일로 창고 극장  [나의 서재]




지난 7월 15일 발간된 이응준 작가님의 연작 소설, 『밤의 첼로』 발간 기념으로 8월 30일에 낭독극 겸,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있었습니다. 출간된 지 꽤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없어 관련 행사 없는 줄 알았는데, 마침 민음사 카페에서 행사 알림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녀왔습니다. 작가님은 여섯 번째로 뵌 듯싶네요.

명동, 명동성당 뒤편에 있는 삼일로 창고 극장이라는 소극장에서, 어수웅 기자님 사회로 함성호 시인님과 더불어 밤의 첼로, 작가님 얘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 북 콘서트, 강연 등과 달리 배우분들 음성으로 직접, 두 번에 걸쳐서 「밤의 첼로」, 「물고기 그림자」, 「버드나무군락지」 속의 내용을 첼로 연주와 곁들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책으로만 보던 문장을 직접 듣게 되니 한결 새롭고, 문장을 한 번 더 되새김질할 수 있어서 의미 있고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응준 작가님과 동년배로 친구분이신) 어수웅 기자님의 진행도 편안했고, 작년에 뵀었던 함성호 시인분의 여전한 촌철살인도 반가웠습니다. 나름 궁금했던 연작 소설 쓰게 된 과정이나, 작가님의 새로운 소식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그리고 저자와의 만남, 낭독극이 끝나고 의도치 않게; 저번 『느릅나무 숨긴 아래 천국』 작가와의 만남 때처럼 뒤풀이를 따라가게 됐는데... (이하 생략)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아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더군요.
"저는, 제 정체성이 세 개예요. 첫째는 무사, 둘째는 법사, 셋째는 노동자. 그중에 작가는 없어요. 저는 작가를 노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에 예술가는 없어요. 그 안에 영화감독도 없어요. 무사, 법사, 노동자. 요 세 가지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해요."





2013-09-29 일요일 오후 1:23
A Writer's Bunker : 자살의 예의
2013/09/01 19:49 2013/09/0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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