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승강구를 걸어나와 혹은 두 칸씩 뛰어 올라와 건널목 앞에 선다. 그리곤 사람들 멀찍이 뒤편에 선 채로 담배를 피우는 식이다.
며칠 전부터인가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에 라보 한 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끈한 차체에 깔끔한 내부. 메뉴판을 보니 (즉석) 우동, 짜장 2500원, 오뎅 500원이란 글씨가 보였다. 퇴근길에 들러 식전에 우동과 짜장을 먹는다? 왠지 그 생뚱맞음에 오지랖 넓게도 서글퍼졌다. 젊은 주인장의 사정과 의도를 생각하려던 찰나 파란불은 들어오고 담배 불씨는 필터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발을 옮겼다.
며칠 후, 그러니까 오늘. 예의 그 라보를 바라봤다. 바람막이 천에 시선이 닿고 2000원이라는 표딱지가 보였다. 그 장난감 같은 트럭을 본지가 채 며칠이 안된 것 같은데. 그새 가격인하를 단행한 모양이었다. 번화가도 아닌 아파트촌 앞에서 아이템 선정부터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고, 건너편 건널목 앞에 도넛 (겨우내 팔던 붕어빵 - 세 개 천원에! - 에서 업종전환한) 노점이 보였다. 왠지 숙련돼 보이게 하는 주방장 모자를 쓴 주인이 천막 사이로 보이기도 했고.
그 젊은 청년(들?)의 벤처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내릴 가격은 없어 보였다. 언젠가 종로거리를 지나다 획기적인 거리 음식을 본 적이 있다. 무려 (철판?) 김치 볶음밥, 일천 냥을 내고 일회용 밥그릇에 일회용 수저를 들고 길거리에서 밥을 먹었다. 숭늉과 김 조각과 단무지까지 셀프서비스 항목들의 전열도 괜찮았고. 나름대로 가격 대 성능 비를 예찬하며 그 아이디어에 새삼 감탄했었다. 물론 사람들도 그 참신함에 이끌려 모여들었고. (지금도 번성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 늦게나마 집에 돌아올 때 쯤, 또 다시 그 라보가 보인다면 오뎅을 하나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넌지시 분위기를 살펴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 기운 사이로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의 공백이 보일 듯싶어 왠지 주저하게 된다.
하여튼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다. 그 청년도 그랬을 테고...
관련글 :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 그 이후
| 3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 [길 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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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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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moth on 2005/04/0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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