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년 나온 원작소설로 03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05년에 본다. 그 시간의 간극 속에 이야기의 신선도는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채, 이미지의 과잉과 낯간지러운 문어체의 함정속에 제 갈길을 잃고 만다.
자살안내인이란 가상의 직업도 자살 사이트등의 현실앞에서 유통기한을 넘긴채 사뭇 친절한 대사를 읖조리며 몰락을 자초한다. 그속에선 더 이상 어떤 담론도 끄집어 낼 수없다. 그 가당찮은 고자세의 기운에 불편해지고, 원작을 원없이 비켜가는 감상적 말로에 허탈해진다.
팽만했던 나르시시즘의 기운도, 냉소와 건조함속에 인도되는 파국적 결과도, 때론 교차하며 때론 대칭적으로 소설속을 오갔던 인물들도 표피만을 따라다니다 것돌고 만다.
묻는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그 판단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지만 이해하지 못할 아니 제대로 표현되지 못할 의식의 과잉과 나르시시즘으로의 함몰에 대한 판단은 간단할 듯 싶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김영하 소설 원작 영화들이란...
-Zire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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