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제너레이션 My Generation (2004)
우울하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관습적"으로 우울한것이 아니다. 삶에 기대어 돌아서 비켜나오지 못할 만큼의 좁디좁은 골목에 맞딱뜨린채로 그저 단칸방에서 점퍼를 뒤집어 쓴채로 자동차 오락을 즐기는 것 뿐이다. 화면속의 주행은 빗나가고 "나의 세대"들의 여로들도 그렇게 엇갈려만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자꾸만 비싸지는데... 우리도 꿈을 살 수 있을까? 그들이 "지르"고자 하는건 헛된 허영의 담보물이 아닌 삶에 대한 의지와 일가닥 남은 꿈의 잔상들일 테다.
"병석과 재경은 오랜 연인 사이다. 영화감독이 꿈이지만 당장은 시덥잖은 아르바이트 밖에 할 수 없는 병석은 설상가상으로 형이 진 빚까지 떠안게 된다.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 본 적 없는 재경은 간신히 나가게 된 사무실에서도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하루만에 해고당하고 무턱대고 시작한 인터넷 홈쇼핑에서 사기를 당해 되려 큰 빚을 지고만다. 병석은 그런 그녀를 나무라지만 빚을 해결하려고 결국 그의 꿈을 이뤄줄 카메라를 팔고, 한편 재경은 카드깡으로 돈을 마련하려는데..."
흩날리는 갈비집 숯불사이로 타오르는 건, 잿빛으로 남은 남루해진 현실속에 묻힌채로 타들어가는 꿈일테다. 현금지급기에서는 숫자로 재단되어진 현실의 지표들이 호출되고 거울을 마주하기 조차 힘들게 한다. 결혼식장에서는 눈물만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허기에 찬 새벽녘에는 조용히 게임 속으로 침잠해간다. 원망스런 형에겐 야멸친 주먹질 대신에 건조한 포옹만이 가로등불 아래서 지나쳐갈 뿐이다.
사람에게 그리고 돈에게 버림을 받는 다는 것. 막다른 소실점을 향해 나아가듯. 차오르는 감정을 눌러가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그럼에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란 그 어느곳에서도 정당히 위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배"가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애완견의 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급전"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단지 경광봉을 돌리며, 친구들에게 홈쇼핑 상품을 권할 뿐이다. 점점 소멸해가는 일말의 자존을 배제한채로 말이다.
현실은 한편 외면한다. 그들의 "조난신호" 앞에선 실업과 신용불량의 무책임한 낙인만을 덧씌운다. 그럼에 우울한 그들에게 남겨진건 "꿈"을 헌납한채로 "깡"을 쓰는 법 뿐인지 모른다.
이 불편한 기시감들에서 영화가 아닌 현실과 조우한다. 그건 영화속에서 쉽사리 보지못할 "떠밀려가는 청춘"의 울림들이다. 카메라속 현실만이 컬러로 채색되어진채 무덤덤한 질문을 건낸다. 할말이 있느냐고, 울어보라고. 하지만 그 대답을 위해서는 카메라를 꺼야한다. 흑백으로 단절된 화면속을 나와 그 질문은 우리들에게 건내진다.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 대답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만은 모두의 몫이다.
(영화속으로의 도망이 아닌, 현실속으로의 가담. 한편 불편할테지만 희소한 기회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2004. 12. 20 lunamoth.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에 이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 소년을 돌봐주던 중년 아저씨는 결정적 순간에 소년에게 말한다. “너에게 살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죽지는 마라. 그러면 내가 꼭 다시 돌아오겠다.” 세상을 살아본 기성 세대로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할 만큼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세상을 버티게 하는 건 바로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세상이 아름답거나 좋아서 사는 건 아니다. 죽을 만한 용기도 부족하다. 하나 그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끈이 삶을 유지하게 만든다. 어설픈 희망이나 용기를 주는 것보단 그것을 보여 주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 노동석 감독 (via film2.0)
불편함이 주는 미덕: My Generation
‘카드 권하는 사회’에 파묻힌 두사람 반항마저 포기한 ‘우리 세대’의 초상
마이제너레이션 - 우울한 청춘 by 모란봉13호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꿈을 말하기, <마이 제너레이션> by 달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