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정처없이 걷는 것도 그럭저럭 막막한 공회전과 풀리지 않는 일상의 반복을 다독거려 주는 역할을 충분히 한다. 굳이 목적을 두지 않아도 괜찮다. 흩뿌려진 은행잎을 밟으며 한 낮의 공기와 호흡하며 삶에 대한 채무감을 잊고서 그저 걷는 것이다. 지나온 길은 생각하지 않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딪으면서 마음을 정리해 나가는 것에 걷기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가끔 신호등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다 보는 것도 좋다. 그 때는 그 어떤 것과도 화해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듯한 마취상태로 빠져들 것만 같다. 짐의 무게는 결코 느껴지지 않으리라. 어떤 의무감에서가 아닌 어떤 목표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이동의 수단으로서의 걷기도 쉼표와 말줄임표 사이의 그 넉넉한 여운처럼 마음을 여유롭게만 한테니...
그 날 오후의 짧은 걷기 또한 그러하였다. 충전받고 있는 듯한 느낌의... "금일은 휴관일입니다" 란 팻말과 휴대폰의 빈사와 PDA는 low battery 메시지도 저런 자위로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충전되지 않은 기기와 충전된 기분 사이에 내가 서 있었다.
| 걷기의 예술 [길 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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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9 18:48
2004/11/09 18:48
Posted by lunamoth on 2004/11/0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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