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은 노출을 전제로 한다. 아니 웹에서의 자기 표현은 프라이버시("비공개의 권리"라는 의미로서가 아닌 "비공개"라는 의미에서의)의 노출을 전제로 한다. 자의든 타의든 그 수위를 조절할 수 있고 또는 불가피하게, 본의 아니게 무방비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근래에 회자되는 사례들을 생각해보자. 이른바 "싸이질"을 통해 ex~들의 현재상을 볼 수 있고, 한 인물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그의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물론 비공개 설정이 있겠지만.)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을 했고, 저번 주 일요일에 "분명히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것이 비록 자의에 의한 공개일지라도 원치 않는 개입의 여지가 남겨둘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프라이버시 교육하기」 란 에코의 에세이를 보자. 그는 그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란 이제 <비공개의 권리>란 의미로 씌여지고, 씌여져야 할 것이다. 정보 시대에 재화 등의 대가로 정보를 요구하는 부당한 압력에 노출되며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야 할 제도들이 생겼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보호란 이제 누구도 더 이상 그것을 원치 않는 세상에서 확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구경거리 사회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원하지 않게 됐다. TV에서 난투극을 벌이며, 발작적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모두에게 사생활을 들려주는 등의 자기과시라는 늪에 빠져있다. 노출 패션 등도 그 상황의 연장선일 것이고..."
그의 진단은 현시점에서 물론 유용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저런 단면들이 난무하고 있다. 잡다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쓸데없는 경품을 얻기 위해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 받기 위해 인적사항부터 월 수입 등 세밀한 정보들까지 무의식적으로, 별다른 저항 없이 제공하도록 자신을 투항한다. 검색엔진과 웹 캐시는 어카이브등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과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검색엔진을 떠돌며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은 유괴범의 표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24. 과장하지 마라" 라는 수칙을 어긴 것일지는 앞으로 모를 일이다. 만박님의 관련 엔트리) 웹에 올린 사진이 어디선가 합성사진으로 떠돌 수도 있을것이고.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공개의 범주를 지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글의 내용의, 첨부물, 독자의 층을 고려한 범주이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도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실명 기재를 피해 이니셜로 표현... 이라든가) 어디까지 표현할 것이며 어디까지 공개의 한계를 지킬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문제이다. 자신의 "결장 사진" 을 공개하든 뭐든 말이다.
"나르시시즘의 길은 무한하게 많다. ...누구든지 자신의 하찮음을 과시할 권리가 있다. 수백만 개의 하찮음은 통계적으로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그 사람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는 현대의 고독과 익명성의 비극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즉석사진 하나를 얻었던 것이다."
『미네르바 성냥갑』 , 「미스터X의 결장 中에서」
정작 현재 프라이버시에 대한 문제는 에코의 지적대로 다음에 가까울런지 모른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담당하는 여러 당국이 해야할 진짜 일은,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사람들 (비율로 보아 전체 국민에서 소수이다.)을 지켜주는 작업이 아니라, 열광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귀중한 자산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2004. 8. 17 lunamo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