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혹은 만화로 바꿀 목적에서 씌어질 수 있었던 것에 달려들고 있네. 소설에서 본질적인 것은 오직 소설에 의해서만 말해질 수 있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개작되었든 각색에서는 비본질적인 것만 남게 되기 때문이지.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설을 쓸 만큼 미친 작가라면,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는 사람들이 그것을 각색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달리 말해서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네.
밀란 쿤데라의 『불멸』p301.
위 쿤데라의 진술에 따라서 이 영화는 김영하의 원작 「거울에 대한 명상」(『호출』), 「사진관 살인사건」(『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을 비켜 나와서 소설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다른 감상의 변종 교배물처럼 느껴졌다.
사랑과 유혹에서 오는 치명적 결과에 대한 화두와 엇갈린 관계에서 오는 배반의 반전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서로 다른 두개의 단편을 하나로 융합시키면서 억지스러워 보이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싶다.
김영하의 원작을 읽은 나로서 자연스레 원작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알고 있는 진행을 따라가며 영화적 처리에 집중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선견으로 인해 감상이란 측면보다 비교와 대조의 수순으로 어쩔 수 없이 매몰된 것 같기도 하다.
사진관~에서 가져온 주인공은 소시민적 형사에서 호사스런 반장역으로 탈바꿈 됐으며 그의 아내는 거울~에서의 성현(수현)으로 설정된다.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아내는 치명적 유혹을 담은 팜므파탈로 그려지고 배신의 신파를 풀어나갔던 가희는 이중적 사랑을 내재하고 있는 복합적 인물로 그려진다.
사진관~에서 보여졌던 허구적 욕망에 배치된 비루한 일상으로의 회귀가 영화에서는 약하게 그려졌고 거울~에서의 치고받는 대화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엇갈린 관계의 반전, 욕망관계의 삼각 고리의 매듭도 영화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게 단소 하게 부연 된 것 같아 아쉽다.
소설 원작을 접하지 않고서 이 영화를 봤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본다. 엽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실소를 금치 못하다 여운이 남을까 아니면 씁쓸한 뒷맛에 불쾌해지기만 할까.
어찌 됐건 문학작품에서 "변혁"을 꾀한 감독의 단편 봉합술은 그리 성공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욕망 구조의 틀과 형식과 영화적 외피만은 그럴 듯 싶으나 관객에게 납득의 여지를 편의적으로 상세하게 부연해 주지 않아 의혹의 물음표로 발걸음을 뒤로하게 만들 것만 같다. 소설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욱 더...
이미 드라마시티 류의 단편 드라마극 으로 극화된 바 있는 사진관~이 원작의 그대로를 답습했다면 이 영화에서의 그것은 영화형식에 따른 반전배치와 스토리 진행만이 남아 공허한 스릴러 요소로 뒷받침 된것만 같다. 좀 더 원작의 치중 했으면 하는 바람은 원작의 팬인 나만의 생각일까, 아니면 영화적 이해를 염두에 두지 못한 미망일까? 이 영화가 나름의 안정적 궤도를 유지한다면 (한석규의 재귀와 함께) 두고두고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리라 생각된다.
영화적 구현의 측면에서는 한 표를 주고 싶다. 고급 취향으로 탈바꿈 한 것도 볼만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트렁크신 표현도 생생하고... (얼마나 엽기로 느껴질까 이내 장난스런 표정이 된다. :p) 엄지원의 비중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된 듯 싶고 그로 인해 연기도 빛바랜 듯 싶어 아쉽지만 나머지 3명의 연기는 괜찮게 보았다. 한석규는 여전히 완벽하게 캐릭터에 동화되어 있었고. 절절한 연기도 일품이었고.
이런저런 아쉬움 속에 극장문을 나왔지만 원작의 힘과 한석규의 연기와 문학에서의 각색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혼란케 한 나름대로 추천할만한 영화였다. 욕망 관계와 파국적 결말도 나름대로 볼만했고...
여담이지만. 작가의 다른 단편 「손」(『호출』) - 넷 상에 있을수도... - 도 추천해 본다. 거울과는 또 다른 반전의 묘미가 숨어있다.
문학, 영화, 교수등 종횡무진인 김영하의 또 다른 작업물 - 시나리오 각색의 - 인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또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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