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정도 지나고 느낀 것은 일말의 안도감과 한편으로 지난할 것이 분명한 연체 기간에 대한 불가피한 좌절감이었다. 그러던 단상은 잠시뿐이고 일상은 계속 되었다. 그런 극도의 열등감과 우월감의 상존으로 대차대조는 제로지점을 향해 갔다. 더 이상 그를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잃을게 없다는 자조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장미빛 기대감도 아닌 그 기저에 깔린 음울한 고소 혹은 끝갈데 모를 패배감의 쓴 맛 이었다.
그가 갔던 길을 걷게 될, 따라올 이를 보는 느낌 또한 이와 별 다르지 않다. 그 속엔, 그 눈 빛 속엔 언젠가 짓게 될 애뜻한 상실감과 휴지기에 접어들 감정의 황무지를 오래지 않아 연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담백하게 무언의 충고를 건내는 것이다.
"애써 잊으려 할 것도 없어, 언제든 눈 감으면, 잠이 들고 나면 조용히 다가와 아른 거리며 널 예전의 너로 기억하게 해줄테니. 그저 스쳐지나 간다고 해도 때론 모든 것을 걸고 밑 바닥까지 추락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 또한 없을 거야. 오늘의 너는 과거의 너를 언제든 제 자리로 불러 들일 수 있을 거야. 얼핏보면 달라 보일 테지만 지나고 나면 모두 하나 둘 쌓여서 이뤄지는 퇴적물임을 깨닫게 될테고 말이야.
더 이상 신조와 강령과 규율과 교범에 맞춰 의식적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될때 쯤이면 그 이해 못할, 불가해한 웃음의 의미를 너는 깨닫게 될거야.
그리고 모든 것이 한낱 안주거리로 화석화될 그 날까지 우린 무자비한 감정의 굴레도, 속박도 하나의 축복으로 자위하며 그렇게 잠시나마 길들여져 가고 즐기면 될 뿐이야.
그렇게 어느 곳에 기간이 되는 것도 어차피 우리 살이 중에 짧디 짧은 한 기간에 불과하니.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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