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하나의 주기에 들어갈 것 같네요. 뭔가 현재의 상태를 몇 글자의 단어들로 풀어내려 하려는 것 말이에요. 여긴 참 주종을 가늠할 수가 없어요. 매일같이 얕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물을 내뱉고만 있는 것 같고요. 소재, 주제, 문체, 어투 모두 중구난방. 예전엔 그냥 쓸 뿐이었는데, 이젠 두려워져요. 문을 걸어잠그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나아 질려나요?
여전히 "프로작을 씹으며 발자크를 읽는" 나날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나약함에 대한 이유 없는 긍정도 체불된 미래에 대한 때 이른 낙담도 모두 그때뿐이고요. 귀기울여 들어봐도 모두 똑같은 얘기의 반복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외피만 쳐다보게 되고요.
며칠 전이었죠. 전화를 받고 우산 두 개를 들고 급히 나가게 됐죠. 가는 비를 맞으며 애써 가당찮은 객기를 홀로 독려하고 있던 찰나 황급히 챙겨온 담뱃갑을 쳐다봤더랬죠. 빈 갑. 더할 나위 없이 재밌어지는 순간이었죠. 도리가 없어요. 그저 말 그대로 하릴없는 순간이에요. 끄느름한 저녁녘에 우산 두 개와 라이터와 빈 담뱃갑을 양손에 나눠 든 채로 물이 찬 슬리퍼를 끌고 가는 한 남자가 보였죠.
딱히 답답한 심정은 아니었을 거에요. 대략 낭패란 말풍선이 머리 위에 나직이 그려지곤 있었겠지만. 조용히 우산을 펴들고 건널목에 선 채 애꿎은 빈 갑만 구겨져 가고 있었겠죠. 비거스렁이를 기다리며 돌아왔을 테고요.
5 3 1 3 3 5 3 3 1 5 그렇게 대중없이 게워내고 있어요. 언젠가 빈 갑을 손에 쥔 채 오랫동안 머금은 눈물을 쏟아낼 때쯤이면 그날이 떠오르기도 하겠죠. 가녀린 추억의 그늘을 뒤로한 채로...
여전히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우산은 없고 빈 갑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가 봅니다.
| 빈 갑 [길 위의 이야기]
2005/07/11 03:42
2005/07/11 03:42
Posted by lunamoth on 2005/07/11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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